감정이 흔들릴 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다짐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다짐은 단 한 번도 제대로 효과를 낸 적이 없었습니다. 작년 이맘때쯤 업무와 집안일이 한꺼번에 쏟아지던 시기, 저는 마음을 고쳐먹으려는 대신 운동화 끈을 묶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전부였는데, 그게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걸 바꿔놓았습니다.
뇌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불확실성입니다
감정이 불안정해지는 원인을 이야기할 때, 많은 분들이 “그냥 의지가 약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 그렇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뇌과학 쪽 자료들을 들여다보니 이야기가 좀 달랐습니다.
인간의 뇌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위협으로 인식합니다. 이때 활성화되는 영역이 대뇌 변연계(limbic system)입니다. 대뇌 변연계란 감정, 공포, 욕구 등 원초적 반응을 담당하는 뇌의 중심부 구조물을 말합니다. 이 영역이 과활성화되면 이성적 판단을 맡는 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기능이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전두엽이란 계획 수립, 충동 억제, 감정 조절 같은 고차원적 사고를 처리하는 뇌의 앞쪽 부위를 가리킵니다.
결국 감정이 흔들리는 상태에서 “이성적으로 마음을 다잡자”고 하는 건 불 난 집에서 소화기 대신 냄비 뚜껑을 들고 싸우는 꼴과 비슷합니다. 구조적으로 잘 작동하기 어려운 전략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분들이 이 방법에만 의존한다는 게 제가 답답하게 느끼는 지점입니다.
뇌가 안정감을 느끼는 조건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예측 가능한 환경, 즉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길지 내가 알고 있다”는 상태입니다. 코르티솔(cortisol)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있는데, 코르티솔이란 스트레스 자극에 반응하여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장기간 높은 수치가 유지되면 면역 저하와 감정 불안정을 유발합니다. 규칙적인 루틴은 이 코르티솔 분비를 억제하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에서도 일상의 구조화된 루틴이 불안 장애 관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을 안내하고 있습니다(출처: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
행동이 감정을 끌고 가는 이유, 행동 활성화 이론
“기분이 나아지면 그때 움직이겠다”는 말을 주변에서 자주 듣습니다. 저도 한동안 그 논리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기분이 나아지는 날은 잘 오지 않더라고요. 주말 내내 누워 있다가 월요일을 맞이하는 악순환이 거의 한 달 가까이 반복됐을 때, 저는 이 논리 자체가 틀렸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행동 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 이론으로 설명합니다. 행동 활성화란 기분이 좋아져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먼저 시작함으로써 기분이 그 뒤를 따라오도록 유도하는 심리치료 기법입니다. 우울증 치료에서도 활용되는 검증된 접근법으로, 인지행동치료(CBT)의 한 축을 담당합니다.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란 생각과 행동의 패턴을 바꿔 감정 상태를 개선하는 심리치료 방식을 말합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의욕도 없는데 뭘 한다고 달라지겠어”라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그런데 아침에 무조건 운동화를 신고 집 앞 공원을 딱 10분만 걷겠다는 규칙을 정하고 나서부터는 뭔가 달랐습니다. 걷는 동안 생각이 잠잠해지고, 돌아오면 커피 한 잔 마시고 앉아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감정이 먼저 움직인 게 아니라 발이 먼저 움직인 것이었는데, 그 순서가 맞았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도 있습니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존 레이티(John Ratey) 박사는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이 세로토닌(serotonin)과 도파민(dopamine) 분비를 촉진한다고 설명합니다. 세로토닌이란 기분 안정과 수면 조절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부족하면 우울감과 불안감이 커질 수 있습니다. 꼭 헬스장을 가야 하는 게 아니라 20분 산책, 가벼운 스트레칭도 충분한 자극이 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출처: 하버드 헬스(Harvard Health Publishing)).
루틴이 흔들림 속에서 기준점이 되는 순간
많은 분들이 루틴 하면 아침 5시 기상, 냉수 샤워, 명상 30분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시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도 그런 ‘완벽한 루틴’을 만들어보려다 열흘 만에 무너진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루틴의 규모보다 루틴의 지속 가능성이 훨씬 중요하다고 봅니다.
심리적으로 힘든 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도 실천할 수 있는 것이어야 루틴이 기준점 역할을 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작고 시시해 보이는 행동일수록 오히려 힘든 날에도 실행이 됩니다. 아침에 물 한 잔, 10분 걷기, 자기 전 오늘 감사한 일 한 줄 적기. 이런 것들은 감정이 바닥을 치는 날에도 버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기효능감이란 “나는 내가 계획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캐나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제시한 개념입니다. 이 자기효능감이 높을수록 스트레스 상황에서 더 빠르게 회복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꾸준히 보고되어 있습니다. 작은 루틴을 매일 지키는 것 자체가 이 자기효능감을 쌓는 과정입니다. 대단한 성과 없이도, 그냥 오늘도 걸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다음은 제가 실제로 감정이 불안정하던 시기에 유지했던 루틴들입니다. 거창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 기상 후 물 한 잔 마시기 (딱 이것만 해도 됩니다)
- 집 앞 공원 10분 걷기 (운동이 아닌 ‘환경 전환’이 목적)
- 점심 후 5분 스트레칭 (의자에서 일어나는 것 자체가 전환점)
- 자기 전 오늘 감사한 일 한 줄 손으로 적기
- 스마트폰 취침 30분 전 무음 전환
이 중 하나라도 지켜진 날은 “오늘도 뭔가 했다”는 느낌이 남았고, 그 느낌이 다음 날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됐습니다.
기록하는 습관이 감정을 객관화하는 이유
감정이 복잡할 때 머릿속에서만 생각을 굴리면 걱정이 걱정을 낳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왜 이럴까”, “내가 잘못한 건가”, “앞으로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새벽 2시까지 천장만 바라보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시작한 게 감정 저널링(emotional journaling)입니다. 감정 저널링이란 자신의 감정 상태를 글로 기록하는 행위로, 단순한 일기와 달리 ‘지금 내가 무엇을 느끼는가’에 집중하는 심리적 자기 관찰 방법입니다. 예이지 박사(James Pennebaker)의 연구에서는 감정을 글로 쓰는 행위가 스트레스 반응을 줄이고 면역 기능 향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처음엔 뭘 써야 할지 몰라서 그냥 “오늘 짜증났음. 이유는 모르겠음”이라고만 썼습니다. 그런데 그걸 며칠 이어가다 보니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수요일 오후에 유독 감정이 불안정해진다거나, 특정 사람과 대화 후에 기운이 빠진다거나 하는 것들이요. 생각으로만 굴릴 때는 전혀 몰랐던 것들이, 글로 꺼내놓으면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록 습관은 자기 성찰이나 자기계발의 영역으로만 보는 시각이 있는데, 제 경험상 이건 감정 조절의 실질적인 도구에 가깝습니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메타인지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능력을 말하며, 이 능력이 높을수록 스트레스 상황에서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기록은 이 메타인지를 훈련하는 가장 접근하기 쉬운 방법입니다.